[토론문] 청년의 의제가 ‘노동시장 밖 노동’이 될 때 생기는 질문들

2022 한국 기본소득 포럼 세션1. 청년, 공유지를 꿈꾸다에 제출한 토론문입니다. 발제문과 다른 토론문들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포럼 안내 페이지 자료집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인정 연구자의 “생존을 넘어, 모두의 실존을 향한 노동:청년생태활동가들의 일 경험과 의미 연구”는 독특한 소수의 개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연구다. 이 연구는 ‘청년’의 ‘일’과 ‘노동’을 탐색하는 연구이지만, 그 노동이 ‘시장 밖’에 있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청년 노동’에 대한 연구들과는 궤를 조금 달리한다.

청년 정책과 일자리 문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청년”의 정의는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인데, IMF 체제 이후 한창 무르익은 시기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과실을 맺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부터 ‘청년 문제’가 시작되었고, 그에 기반하여 청년 정책과 청년 기본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청년 문제’는 청년의 문제라기보다는 금융화로 예측 불가능해 진 글로벌 시장의 리스크를 노동 시장의 수요자들이 고스란히 공급자들에게 전이하면서 고숙련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숙련 불안정 일자리가 늘어난 문제, 시장의 문제라고 봐야한다. 그 과정에서 삶이 고단해진 것이 비단 청년 세대만은 아니지만, 이것이 청년 세대의 문제로 논의되어 온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청년”마ㅋ저 일자리”가 없는 것이 산업화 이후 자리잡은 사회 통념에 반하는 현상이기도 하고, 조직화 된 ‘청년 당사자’ 운동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 결실로 2018년 도입된 청년 기본법은 청년을 만 19세 이상에서 만 34세 이하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성취가 이루어지는 동안 청년 당사자 운동에서 결국 해소되지 못한 문제는 ‘청년’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고, 같은 처지에 놓여있지 않으므로 하나의 이해관계자로 ‘대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청년기본법 제2조) 하려면 고정적이지 않고, 단일하지 않고, 기성세대의 대상화 된 프레임에 갇히기 쉬운 청년 세대의 시민들에게 더 많은 마이크를 쥐어주고, 그들이 청년 세대 내에서 연결될 기회를 다층적으로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할테다.

이 연구는 ‘생태적 노동’이라는 키워드로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다. 대도시와 산업단지 중심의 노동 시장을 떠나 자기 삶을 만들어나가는 청년들은 어떻게 노동하고 있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발제문은 덜 하고,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수행하며 공생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를 주도적으로 조직화하는 생태적 노동을 통해 생태적 삶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맥락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가 만난 청년 생태활동가들은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며 획득한 일자리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구조적인 한계를 인지함으로써 주체적 관점을 가지고 다른 삶으로 전환을 시도한다.(1. 1) 기존 노동에 대한 평가) 생태적 노동은 도시의 임금노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주하다. 내 생활의 몫을 자급하고, 자연에 인위적인 무리를 가하지 않고 제철에 맞추어 살아가려면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고, 기르고, 채집하고, 돌보아야 한다. 나 자신 또한 그 자연의 일부이므로 휴식을 취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지낸다. 연결된 모든 것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 흐름 안에서 ‘노동’과 ‘삶’은 ‘워라밸’로 분리되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희생시키지 않고 통합적으로 굴러간다.(1. 3) 생태적 노동의 탄생, 2. 생태적 삶의 탄생) 직장인들 간의 대화에서 흔히 이야기 되는 ‘노동자인 나’와 ‘진짜 나’ 정체성의 분리가 없다. 동시에 전문화 된 하나의 ‘일’만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들은 행사를 기획하고, 교육을 운영하고,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농사도 짓고,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한다. 스스로 온전하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외부에서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보기도 한다. (3. 1) 불인정노동)

이 청년들이 보고 있는 세상은 착취의 악순환으로 생태적 환경을 재생산하지 못하고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이 인식에서 출발하면 가치는 경쟁과 차별화, 시장점유율, 거래와 교환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잘 지키는 것, 절제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인식에 기반하여 자기 삶을 자립해내고자 하는 청년은 곧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이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자급자족을 위한 것을 생산하면서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지속가능한 일과 삶, 환경을 지향하는 이들의 노동이 정말로 계속되려면 결국 이 질서가 이들의 삶 바깥까지, 지역사회와 시장, 법과 정책에 자리잡아야 한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높은 임금, 더 좋은 복지 같은 임금노동 시장의 조건이 아니라 기만적이지 않고, 착취적이지 않은, 노동의 성과에 나를 끼워맞추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이다. 이것은 창업 지원 정책이나 구직 지원 정책의 틀 안에서 해소될 수 없는 욕구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어떤 특정한 성과를 겨냥한 지원이 아니라, 지배적인 질서에 이끌려가지 않고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버티기 위한 힘, 권한, 협상력 그 자체다.

‘청년’은 계속 ‘변화’하는 주체다. 10년 전의 ‘청년’과 오늘의 ‘청년’은 단일하지 않다. 그러나 의사결정자들은 대체로 2,30년 전에 ‘청년’이었던 사람들이다. 잘 정리된 문제의식은 아니지만 발표문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통해 사회에 진입하면서 맞닥뜨렸던 가장 큰 문제가 기회의 수가 절대적으로 너무 부족한 것이었다면, 현재의 청년들이 사회에 진입하며 맞이하는 문제는 대도시에는 비집고 들어갈 자기 삶의 틈이 없고, 농촌 지역에는 표준화 된 자원이 없어 모든 걸 너무나 “운”과 “제도”에 기대어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 아닐까? (3. 생태적 삶의 불안정성 3)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4) 사적안전망에 기대어) 이는 결국 노동 시장의 문제가 청년 문제로 표현되었던 것 처럼, 기후위기와 저성장 시대 생태 사회로의 전환의 로드맵이 부재한 우리 사회 전체의 역량 문제가 청년 삶의 위기와 도전으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번아웃’, ‘조용한 퇴사’와 같은 단어들, 그리고 지속적인 일터에서의 재난 사고들이 보여주듯이 오늘의 청년 세대는 노동 환경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갖고 있다. 대안적 일과 삶을 시도하고 추구하는 경향은 앞으로도 확산되어 나가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위기’를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시장’보다 더 지배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 생태적 삶의 공간이 대도시에 종속된 또 하나의 여가 시장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어떤 자기조직화가 일어나야 할 지 질문해보게 된다.

[에세이] 쉼과 일, 제자리에 돌려놓기

“되게 바보 같은데, 사랑받는 기분이다? 클라이언트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거나 무서운 윗사람한테 칭찬을 들으면, 프로답지 않게 갑자기 눈물이 글썽 고여. 나는 사랑도 꽤 받고 컸는데 왜 하필 그런 순간들에서 충족감을 느낄까? 미쳤나봐. 고장났나봐.”

정세랑 <보늬> (단편집, <옥상에서 만나요> 중)

“언니가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정세랑 작가의 단편소설 <보늬>는 과로사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주인공 보윤은 인터넷에서 언니처럼 야근하다 돌연사한 사람들의 사례를 모으던 중, 생전의 언니가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위의 인용구는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냐는 보윤의 질문에 대한 언니의 대답입니다. 보윤은 그런 충족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하지만, 저는 솔직히 그 고장난 것 같은 마음이 무언지 알 것도 같았어요. 어려운 도전에 성공했을 때의 성취감, 두려움의 대상으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드는 안도감, 동료에 대한 미안함이나 고마움 같은 감정들.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감정들로 만들어지는 마음의 상태가요. 

“일을 그냥 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비단 마음의 문제일까요? 실제로 일은 언제나 일 이상의 것입니다. 일은 나의 생계를 책임지는 생명줄이고, 성장의 과정이자, 소중한 관계이며, 때로는 나의 신분이 되어버리기도 합니다. (특히 금융기관 앞에서 적나라해지더군요.) 이런 식으로 일이 삶의 대부분을 치환해나가다 보면 일을 제외한 삶의 다른 부분이 ‘나머지’인 것 같은 착시마저 듭니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정책도 한 몫 한 것 같아요. 한국의 사회보험 정책이나 주거 정책, 금융지원정책을 들여다보면 세상에는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만 있고 그 외의 구성원들은 ‘나머지’인 것만 같거든요. 온 사회가 착시에 빠져있다면, 내가 제대로 보고있는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어요. 

소설에서 보윤은 언니와 같이 일로 충족감을 주고받는 사람들만 있어도 세상은 유지될 것이고, “나 같은 사람은 부품으로 치면 핵심부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보윤이듯, 세상은 나머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만 지난 세기를 이끌어 온 핵심논리가 나머지를 계약의 중심에 두지 않았을 뿐이죠. 지난 뉴스레터에 이어 다시 한 번, 우리에게는 새로운 계약이 필요합니다. ‘나머지’라는 공간을 애시당초 만들지 않는 형식의 계약이요. 

이런 맥락에서 요즘 정책위원회가 고민하고 있는 키워드는 ‘쉼’입니다. 쉼은 학습이고, 돌봄이자,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이며, 회복의 시간입니다. 배움과 회복, 돌봄 없이 일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점에서, 쉼이야말로 모두에게 핵심적인 부분이고 그냥 쉼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쉼은 남는 시간, 노는 시간으로 퉁쳐지지요. 소설가 어슐러 르 귄이 말년에 쓴 블로그 포스트들을 엮은 책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에는 이런 모순에 대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르 귄은 고령의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하버드 대학교의 설문조사에 답변하던 중 이해할 수 없는 항목을 발견합니다. 여가시간에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질문에 골프, 쇼핑 등등에 이어 창의적 활동이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평생 작가로 살아 온 그는 자신의 ‘일’이 ‘여가’로 취급당하는 것에 대해 분노하다가 이내 여가 시간이라는 구분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나는 아직도 남는 시간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내 시간은 전부 할 일로 바쁘기 때문이다. 항상 그래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 시간은 삶에 점령되어 있다.”

어슐러 르 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같은 글에서 르 귄은 오늘날 십대들이 여가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부디 그들에게 틈이 있어 자신의 내면 깊이 빠져들어있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어쩐지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미래가 없는데 왜 학교에 가야하는 지 묻는 전세계의 청소년 기후위기 활동가들이 떠올랐어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 이전에 꿈을 꿀 수 조차 없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들. 기후위기 시대, 책임있는 정치집단이라면 지난 세기의 청사진을 꿈으로 제시하는 게 아니라, 미래세대가 내용을 채워넣을 수 있는 꿈의 공간을 확보해주는 정치를 해야할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이 지금까지 핵심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던 가치들과 대립하는 듯 보이는 규제의 정치일 수 밖에 없겠죠. 선거국면에서 녹색당이 제시해야 할 새로운 사회계약의 미션은 일과 경제성장, 삶의 질 사이의 끈끈한 연결고리를 끊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규제의 논리가 개인들의 삶에 있어서는 안전을 보장하고 자유를 확보하는 일과 한 쌍이라는 비전을 설득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가 녹색당의 기본소득이 재위치화 될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말이네요. 모두 바쁘고 충만한 쉼의 시간 보내시기를 바라며, 
긴 편지를 읽으며 떠오르신 생각들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정책위원회에게 전해주세요. 🌱

고맙습니다.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백희원 드림. 


7월 부터 녹색당에서 정책 뉴스레터 발행을 시작했어요. 두 번째 뉴스레터의 글을 작성했습니다. 격주 금요일에 발행되는 레터에는 녹색당 정책위원회의 현재진행형 고민과 자문위원 및 위원들의 뉴스 큐레이션이 함께 나갑니다. 구독하기 뉴스레터보기

눈부신 평등의 삶은 어떤 모양일까?

어제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예비후보의 선거캠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다녀왔습니다. 캠프의 기본소득 공약에 대한 정책 토크 ‘서울, 기본소득, 시작’이 있었거든요. 정책안의 요지는 ‘재산세’(토지, 건축물, 주택, 항공, 선박 등에 부여되는 지방세)의 표준세율을 올리고 이 돈으로 월 10만원의 청년 기본소득을 실행한다는 것입니다. 토지에 기반한 공유재 시민배당 같은 인상을 주는 정책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재산이 있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추가로 걷어 그 돈을 보편적인 기본소득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니까, 저는 토크를 하러 가는 길에서부터 ‘불평등’과 ‘재분배’라는 이슈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외로, 기본소득 활동가로서 저는 이 이슈에 대해서 모처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간에는 일단 기본소득의 제도적 실현가능성을 넘어 이 아이디어의 필연성에 공감할 수 있게끔 ‘상상력’을 강조하는 방식의 운동을 해왔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또 ‘기본소득’을 오직 사회정의를 위한 도구로만 설명하는 말하기 방식에 대한 저항감이 있었던 탓도 있겠습니다. BIYN은 언제나 개인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강조해왔거든요. 재분배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는 함부로 사회를 주체로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안으로 이 이슈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저에게 정말로 뜻 깊은 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불평등이 줄어든 사회의 삶이란 구체적으로 대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는 거듭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동등한(동일함 아님 주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만 이야기해왔는데, (너무 당연한 말이라 동어반복 같지만) 이는 당연히 기회의 상대적 격차가 줄어든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즉, 모두의 권한이 늘어나면서 누군가의 특권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특권이 줄어든 세계의 삶은 대체 무엇일까요? 저는 현재 특권을 누리고 있지 못한 사람들 조차 이 사회에서 특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집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내 자식도 언젠가는 좋은 대학에 들어갈텐데’ 뭐 이런 기대들이 있는 것일까요? 아무튼 여기서 기인한 두려움이 우리가 합리적으로 평등을 실현하는 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 같고요.

어제 토크에 함께 참여한 이주영 녹색당 강남구청장 예비후보는 한국 계급 피라미드의 상당히 위에 있는 ‘강남키드’들에게도 탈력감은 예외가 아니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부모세대와 같은 삶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목도하는 데서 오는 ‘무기력감’이 있다고요. (자기연민의 감정이나 ‘우리도 힘들어’가 아니라 솔직한 사실의 기술이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일단 저는 평등에 대한 한 가지 감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평등한 사회에서 우리는 잃을 것도 없고, 모자란 것도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잃을 것이 없다는 것이 주는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모두에게 온전한 자신을 허락함으로서 각자 알아서 (즉, 타인을 착취하지 않고) 위대해질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주겠지요? 여기서 공교육 이슈에 대한 고민으로 넘어가기 전에 정책 토크는 끝이 났습니다. 저에게는 질문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어서 이렇게 미완성의 생각이나마 글로 남겨봅니다.

신지예 예비후보의 메인 슬로건은 “눈부신 평등의 서울로”입니다. 서울만큼 평등이 어울리지 않는 도시가 있을까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울이 전세계 기본소득 실험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면 그때의 가설은 대도시에서 소득격차가 줄고 자산취득에 대한 유인이 줄어든다면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습니다. 예컨대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의 주제가 노동이고, 캐나다 실험이 빈곤과 심리적 안정으로 요약된다면 한국 서울의 기본소득 실험의 주제는 불평등이 되는 셈이죠. 기대가 됩니다. 청년배당, 청년수당과 같은 현금지급정책을 넘어 이 사회의 가장 주요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건드릴 기본소득 정책이요.

[에세이]BIYN의 브랜딩이 내게 알려준 것

조만간 성북동으로 운좋게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폴레옹 제과점에서 성북 초등학교 방향으로 걸어올라가는 넓은 대로는 정말 멋지다. 인도가 없어서 뒤에서 엔진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바짝 벽에 붙는 동네에 살다보니 근래에 성북동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인도였다.

그 길을 처음 제대로 걸어본 날은 디자인 스튜디오 오늘의 풍경 인아씨와 BIYN(구 ‘기청넷’)의 브랜딩을 위한 킥오프 미팅(겸 나들이)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초여름이었는지 늦여름이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간 여름의 어느 날, 인아씨와 커피 맛이 끝내주는 카페에 앉아 나는 기청넷의 새 아이덴티티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한참을 늘어놨다. 인아씨가 열심히 알겠다는 표정으로 내 말을 들어준 덕분에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겠는 순간까지 말을 많이 했다. 할 말 없이 말했다는 게 아니라 생각 이상의 말을 했다는 의미다.

“게으름뱅이를 위한 기본소득 같은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스위스 기본소득 운동에서는 동전을 시각적으로 이용했는데, 우리도 현금이라는 상징을 그냥 당당하게 들이밀어도 좋겠구요. 힙스터들한테 잘 팔리고 싶다!!!” 기억나는 건 그닥 안 중요한 말 뿐이다. 우리가 굿즈를 만들자 쿵짝쿵짝 하며 동전을 알아봤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동전이 생각보다 꽤 값이 나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회의를 마치고 빵을 먹으러 갔다. 빵을 먹고, 길상사에 갔는데 반바지를 입고 그냥 가면 안된다며 다리를 가릴 수 있는 보자기 치마 같은 것을 입구에서 나눠주고 있었다. 알고보니 그 날 높은 스님이 온다나. 절의 맞은 편 가게 벽면에서 효재님이 보살처럼 웃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

남은 여름 동안도, 다가 온 가을에도 모두모두 너무 바빴고 겨울에야 간신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청넷의 개발자인 주연씨도 함께 참여하자 팀 다운 느낌이 났다. 셋이 모인 첫 워크숍 날, 인아씨가 준비해 온 BIYN의 아이덴티티를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깔끔한데 볼드하고 귀엽다는 것이었다. 다른 것보다 청년의 스테레오 타입처럼 톡톡 튀거나 발칙하지 않아서 좋았다. Y가 그냥 그 모양답게 톡 튀어나와있을 뿐. 그래도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색이 들어갔으면 싶어 인아씨에게 검은색 말고도 옵션을 달라고 요청했다. BIYN의 디자이너는 똑 부러지게 고개를 저었다.

색이 필요하면 로고가 사용될 때 배경색을 바꿔. 로고는 무조건 검정이야. 색이 들어가면 너무 귀여워 보인단 말이야. 대신 배경색을 바꾸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서 다양한 색을 쓸 수 있고, 얼마나 좋아?”

나도 귀여운 척은 싫지만 그래도 색을 좀 지정해주세요. 통일된 색이 있는게 굿즈나 그런 거 만들기도 낫지 않아?”

아니야. 기본소득을 통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잖아. 얘는 그렇게 쓸 수 있게 나와있어. 이렇게 그림을 뒤에 러프하고 귀엽게 덧붙이거나, 배경 색을 바꾸거나 하면서.”

인아씨가 만들어 온 몇 가지 예시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여름에 했던 중요한 말들이 유추되었다. 인아씨가 다 기억을 한 것인지 흡수를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본소득이 관점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특정한 문제에 대한 답처럼 소개하는 사람들이 자기 답으로 다른 답의 가능성을 지우는 것 같고, 그 보다는 현재의 여러가지 문제를 반영할 수 있는 관점으로서의 기본소득 운동이 발전되었으면 좋겠고, 그래서 이 의제가 보편적인 삶의 문제이자 사회 전환의 문제로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 좋겠고, 누구나 자기 문제를 기본소득을 통해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고, 당연히 이곳의 기본소득 운동에서는 더 실질적인 문제를 가진 소수자의 목소리에 가중치가 실리면 좋겠고. 그런 말들을 혼란스럽게 했을 것이다.

내가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납득하고 있는 동안 주연씨와 인아씨는 이미 새 웹사이트 와이어 프레임의 톤을 맞추고 있었다. “선이 4픽셀이라구요?” “네.” 너무 큰 텍스트와 너무 두꺼운 선들이 모여있으니 조금 흥이 나고 어이없게도 보기가 좋았다. “이게 브랜딩이야. 히워나.” 그래그래 알겠어. 그걸 보니까 큰 거리에서 큰 목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되어 누구나 그렇게 함께 말할 수 있는 그런 운동을 하면 되겠다. 그리고 이걸 띄우고 나면 비로소 나는 일단 딱 하나의 큰 목소리가 되어볼 수 있겠네. 누군가를 대표하느라 바짝 긴장한 느낌을 감추기 위해 길고 긴 실 같은 걸로 몸을 한참 감싼 주장이 아니라. (끝)


p.s.- 깨달음을 주는 사람. 이것 너무 한국의 중년 남성 지식인들의 판타지적 상황인 것 같은데, 역시 홍두깨(잡지 쿨 3호 참조)의 전적을 가진 인아씨다.

[에세이] 내가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된 이유 : 가족, 공간,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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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동창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최근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자 그렇게 알았다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산다 뭔지 묻지는 않았지만 아마 대기업에서 일하며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친구가 보기에 어딘가 특이해 보이는 삶인 모양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정말 몰랐는데, 남의 눈에는 전부터 기본소득 같은 의제를 주장하며 NPO에서 일하는 어른이 같았다니. 하긴 대학 거리에서 리플렛 배포하다 만난 다른 동창도 어울린다! 화이팅!”이라고 응원해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나는 대체 어떤 애였기에 이런 대답을 듣게 것일까. 어느 반에나 명씩은 있고 인터넷에는 바글바글한, 토론수업을 좋아하고 유난스럽게 음악을 듣는 십대였을 뿐이다. 그런 애가 대학에 들어간 투쟁 현장 언저리를 맴돌거나 화제의 시집을 구입하거나, 고전영화들을 보러 다니는 것은 분명 자연의 섭리보다 강력한 사회의 섭리다.

하지만 졸업 기본소득청년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경영학을 공부하고, NPO에서 일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당사자로서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이었다. 나는 내가 이것을 하고 있는 하나의 줄거리로 통합하려고 스스로를 위한 생각을 하고 했다.

때문에 이런 글을 기회가 주어져 반갑다. 나는 위와 같은 과정들을 거치게 되었고, 2016 추석에 기본소득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위한 자기소개를 쓰고 있게 되었을까? 기본소득청년네트워크가 공동집필 리포트에서 우리는 의견보다 사실에 집중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글에서는 반대로 내가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이유를 아주 개인적인 차원에서 마음껏 써보려 한다.

돌이켜 보면 이후 벌어진 일들은 자연스럽지 않았다 해도, 내가 모두에게 조건 없이 생활에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자는 내용이 담긴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지지하게 것만큼은 필연적이었던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싱겁게도 역시 친구의 말이 맞다. 조금 호들갑을 떨자면 2005년에 세상의 좋은 음악, 좋은 서사를 마음껏 즐길 있는 어른이 되기를 소망하며 3 보내고 있을 때부터 2016 추석에 이런 글을 쓰게 운명이 예비 되어 있었던 것이다.


1.

아버지는 정년을 1 남긴 중학교 교사이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인데, 지난 4 수업을 하던 혀의 느낌이 이상해서 곧장 병원 응급실을 찾았더니 뇌에 종양이 있었다. 검사를 해본 결과 종양은 혈액암에서 전이된 것이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쁜 소식에 여러 감정들이 밀려오는 와중에 한편으로는 문제가 걱정되었다. 다행히 모든 교사들이 자동으로 가입되는 보험으로 재직 중엔 의료비의 80%까지 보장된다고 했다. 직장생활 동안 번도 크게 아프거나 다친 적이 없었던 아버지는 병가를 채로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고, 어머니와 , 동생은 걱정 하나를 내려두고 아버지의 투병생활을 지원할 있게 되었다.

걱정이 컸던 만큼 소식을 들었을 대단한 혜택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이것이 혜택으로 여겨지는 이상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누구라도 일하다 아프면 생계 위험 없이 치료에 전념할 있어야 하는 아닌가? 하지만 병으로 인해 빈곤에 빠지거나 심지어 삶을 포기하는 사례는 없이 많다.

이렇게 정도는 누구나 누리는 당연하지나는 특권을 누리고 있구나 동시에 생각하게 되는 경험은 자주 있는 일이다. 대학 만난 지방출신 친구들 몇은 서울에 사는 내게 부모님 집에서 통학할 있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같은 시기 한편에서는너는 어디서 왔어?”라는 질문에 서울이 아니라압구정이나도곡동이라고 답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론 내가 대화에 참여한다고 세계에 상계동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서울애인 나는 이런 저런 상대평가의 격차를 느낄 때마다, 내가 누리는 삶의 수준에 대해이만하면 충분하다 판단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물론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충분하다고 생각할 있었던 구체적인 이유 가지는 우리 가족에게 20 넘게 살아 집이 있다는 것과 은퇴 교사인 아버지의 연금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졸업 자립할 때까지 안정적으로 집에서 있었고, 부모 부양의 부담을 차치하고 일단은 스스로의 삶만 책임질 있으면 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빚이 아닌 가정, 문제를 내가 해결하면 되는 인생. 엎드려 절할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이상 바랄 것도 없이 감사한 마음이었다.

중요한 점은충분한 특권적인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도 분명했다는 것이다. 주변에는 나와 달리 인생 이상을 감당해야 하는 또래들도 아주 아주 많이 있었다.( 번의 강조도 모자라다) 정도면 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생각에 정도 삶의 조건이 행운의 영역에 있는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였다.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있는 권리, 짧게,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했다. 완전한 자유는 어불성설이더라도, 협상의 여지 정도는 있어야 했다.

내가 필연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까닭 번째가 여기에 있다. 나는 아버지의 직업이 우리가정에 가져다 혜택을 체감했고,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알았으며, 정도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은퇴자에게 연금을 보장하고 모든 가구에 집을 주자는 뜻은 물론 아니다. 가정 사정이 어떻든 간에 누구나 생계유지 이상의 목적을 가진 삶을 있도록 생활기반의 최저선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소득보장 정책으로서 이러한 역할을 달성할 있다. 국민연금이나 실업급여 같은 사회보험이나,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확장이 아니라 굳이 기본소득인지는 아래 차차 드러나게 예정이다.


2.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이 상대평가적인 표현을 때면 어색하다. 기준이 하나이고, 기준으로 상하 위계를 만드는 것이 이상하고, 종종 정보를 단순하게 왜곡하며, 그것이 사회에서 권력 기제로 작동하기까지 하면 옳지 못한 것이 된다. 특히 누가 돈이 많고 적다거나, 일을 (질과 상관없이) 값에 빠르게 끝낸다거나, 어떤 여자가 날씬해서 아름답다거나 하는 평가는 매일 들어도 매일 이상하다.

최근 생각인데, 위와 같은 공정성에 대한 기준은 (가족과 성격의 영향이 가장 크겠지만) 어느 정도 내가 자라온 공간에 의해 형성된 같기도 하다. 나는 때부터 노원구에 있는 상계 주공아파트에 살았다. 4 세대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지하철 정거장이 넘는 거리가 비슷한 모양의 아파트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에 동네에선 다른 종류의 집을 일이 없다. 집뿐이 아니다. 상가도 학교도, 공원도 대칭 구조로 비슷비슷하게 자리 잡고 있다. 물론 현관문 안쪽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사정이 달랐을 테고, 실제로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의미 있는지역으로 이사 가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성장기에는 방이 칸이건 칸이건 화장실은 개인 집에 살고 같은 놀이터에 모여 노는 비슷비슷 형편의 또래 친구들과 함께 자랐다.

마포로 놀러 다니고, 강남으로 출근해보기도 하고, 산도 있고 강도 있는 용산에 4 살고 있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서로 빈부격차를 느낄 없는 또래들이 함께 사는 평범한 환경이 보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으로 상계동 아파트단지는 내게 생활공간의 준거점이지만 이러한 특수성이 20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보다 본질적인 부분, 세계를 감각하고 이해하는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짐작해보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앞에 말한 것처럼 상대평가에 어색함을 느끼는 감각. 미색의 페인트가 칠해 벽을 보면 향수를 느끼는 것처럼, 격차와 차별에 불편함을 느끼는 감각.

내가 필연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번째 까닭은 이것이다. 공감할 없는 가치체계와 별개의 가치체계를 지켜나갈 있는 독립성을 보장받고 싶었던 것이다. 이게 기본소득과 무슨 상관일까? 다른 사회안전망 정책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질 같다.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에는 정규직 노동자의 삶에 부합하는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 피고용 기간이 길수록 많이 보장받는다. 기초노령연금이나 육아수당 같은 현금지급정책들은 특정한 생애주기나 가구형태를 기준으로 설계된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 이성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하다. 물론 여기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동질적인 가치의 추구는 아무리 보편성을 추구한다 해도 누군가를 배제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에는 수급 조건이 없고 사용처에 제한도 없다. 따라서 각자가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데에 소비하거나 투자할 있다. 국가나 시장이 요구하는 가치체계에 휘둘리지 않고 개인들이 신념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지지할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사회안전망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개인에게는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적으로 다양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발생시킬 것이라고 기대한다. 5 후도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환경의 변화가 빠른 현대사회에 적합한유연한 사회안전망이라고 생각한다. 아래 설명하겠지만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회안전망은 한국에 필요한 것이다.

3.

나는 87년생이다. 2010년대의 어린이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지 모르겠지만 나와 같은 90년대의 어린이들은 국역사 가장 부유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6, 70년대 어린이었던 사람들로부터 우리 때는 밥이 없어서 보리밥을 먹고, 바나나가 너무 비싸서 사먹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는데, 모르긴 몰라도 2010년대의 어린이들에게 우리 때는 시판 샐러드 드레싱이 없어서 마요네즈 묻힌 사라다를 먹었더라는 이야기를 하는 8,90년대 어린이었던 사람은 없지 않을까 싶다.

나와 같은 2000년대의 청년들은 80년대에 청년이었던 사람들로부터 우리 때는 억압적인 독재정권에 항거해 젊은이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거리에서 피흘리며 싸웠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야 했는데, 심지어 2006년에 00학번의 입을 통해 한국사회의 가장 모순은 친미 정서와 통일문제라는 가르침을 들을 있었다. 요는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했다가 파산해서 미처 복지제도는 못만들고 대신 대학생들에게 신용카드를 뿌린 한국 사회에서 성장해서잉여삼포세대헬조선이니 하는 말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헬조선같은 단어가 없던 때에도 한국은 항상 어딘가 모자란 곳이었다. 초등학생 의무적으로 구독하던 소년조선일보 1면에는 해외에 사는 한국인 어린이들의 체험수기 연재가 있었다. 한국인 부모와 달리 미국인 부모는 극장 요금을 적게 내기 위해 자녀의 나이를 속이지 않는다거나, 뉴질랜드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은데도) 양말을 기워 신더라는 소소한 교훈들이 실리곤 했다. 한국은 어느 정도 선진국의 외관을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다른 선진국의 시민의식과 혁신과 복지 등등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다. 이런 결핍은 한국 사회 모든 영역에 존재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정부복지지출액과 노조가입율과, 시민들의 정치참여율과, 청년 창업율과, 학술서 번역과 아무튼 끝도 없다. 그렇지만 모르긴 몰라도 해외연수는 제일 많이 가는 나라 아닐까? 빠르게 해외 레퍼런스를 카피하는 능력은 여러 부작용을 낳지만 한국의 경쟁력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경제성장은 정량적 지표에 대한 목표를 달성함으로서, 눈에 보이는 부유함을 카피하려 노력함으로서 성취할 있었다 해도 복지는 그렇지 않다. ‘삶의 이나 안정성, 행복 등은 명확히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닐 뿐더러 문화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 복지국가의 경우 복지의 역사가 빈민 구제부터 시작하면 길게는 2세기에 이르고 적어도 1950년대부터 발전되어 왔다고 있다. 하지만 2010년대의 한국은 전혀 다른 시공간이다. 한국의 복지는 정부의 발전주의적 기조에 따라 경제성장을 위해 투자하고 남은 예산을 빈곤층에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잔여적 복지체제이고, 그나마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된 것도 20년이 못된다. 복지확대를 주장하는 정책가들은 있지만, 이를 실행 하기위한 정치적 지지 세력은 뚜렷하지 않다. 그러나 복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에서선진국 복지모델을 카피하는 것은 어렵고, 적합하지도 않다. 기본소득은 실행까지 정치적 비용이 필요하지만, 기술적으로는 가장 간단한 복지정책이다.(특히 한국처럼 주민번호등록이 되어있고 빠르고 통합적인 전산화를 구축한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도 재원 조달 방법이나 다른 정책과의 연결에 따라 다양한 성격의 대안으로 발전될 있다. 이에 나는한국적상황에 적합한 사회안전망을 도입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본소득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리포트에서 살펴보겠지만 국가의 기본소득에 대한 접근 방식은 모두 다르며, 이를 비교해보는 작업은 국내에서의 접근법을 개발하기 위한 의미있는 내용이 것이다.

이것이 내가 우리 세대로서 필연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까닭이다. 앞서 민주화 세대, 산업화 세대 이야기를 꺼냈던 것은 우리 세대에도 그에 대응하는 미션이 있다면 바로 가정을 넘어 사회적 보호를 조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이를 위한 핵심 의제가 있다.


0.

개인에 대한 글을 써보겠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어쩐지 직업병처럼 기본소득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은 같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나에 대한 이야기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보편적인 청년으로서 청년 세대론의 영향력 하에 있는 내가, 그런 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지난 4 간의나의 기본소득 운동 의미이기도 같다.

오늘 청년들은 이도 저도 아닌 같은 존재로서, 사회의 잉여나, 무엇을 포기한 존재로 스스로를 주변화 시키는 익숙하고, 부정의 언어로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으려는 모순에 빠져있다. 사회가 청년에게 이러한 프레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어려움을 설명하고 정당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중요한 권리이지만 과정에서 스스로를 취약화 하게 되기도 한다. 지난 4 나는 사회구성원 개개인이 자유로울 있는 안전하고 유연한 사회를 위한충분한 기본소득 요구함으로서 언어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청년 해결해야 문제로 제시함으로서 자원을 집중시키려 하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목표를 가진 주체로서 자원을 요구하고자 했다. ‘헬조선이나흙수저같이 빠르게 유통될 있는 언어를 만들어내진 못했지만.

이상나의 기본소득 운동 동력이 내가 가진 것들, 소중한 개인적인 기억들, 그리고 약자로서의 입장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기본소득은 아주 간단한 내용이고 내가 그러했듯 누구나 개인적인 의미에서부터 지지할 있기 때문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공통의 목표를 갖게 되고, 각자 자기 자신을 지원하면서 서로를 지지할 있다는 기본소득 운동의 멋진 점이다. 읽고 나면 향후 진행 멋진 과정에 함께 하고픈 마음이 만한팩트 중심의 리포트 약속하며 글을 마친다. ()

2016년 퍼블리에서 BIYN의 이름으로 작업했던 “글로벌 기본소득의 모든 것” 리포트를 위한 저자소개글이었으나 (저의 결정으로) 발행되지 않았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