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적고, 권력을 가진 좋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더 적다. 여성이 힘을 얻는 이야기는 대체로 부정의하다. 사회가 그런 방식만을 허락하고 그런 이야기만 선호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점을 지렛대 삼아 통쾌하게 모든 걸 역전시켜버린 영화로 <미스 슬로운>(2016)이 있었던 것 같다. <더 포스트>의 주인공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은 이 점에서부터 이미 예외적인데 가족경영권이 대대로 내려오는 워싱턴 포스트지의 CEO이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정통성을 물려받은 여성이다. 물론 여기에는 우여곡절이 있다. 원래 후계자였던 남편이 자살하여 그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더 포스트>는 권력을 가졌지만 그걸 사용할 입을 가지지 못한 캐서린이 미국이라는 세계를 바꿔놓을 한 마디를 해내는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 스필버그는 자기 세대의 가장 극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건(결국 워터게이트 폭로로 이어진다)의 주인공으로 여성을 비추고, 잃어버릴 것, 지킬 것이 있는 여성이 모든 걸 걸고 대의를 추구할 때 그 용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그 숭고함을 전한다. 라이언 일병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에 대해서, 외계생명을 사랑하는 아이에 대해서 그러했듯이.
남자들의 세계에서 경영위기에 맞서 회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더 큰 가치를 위해 큰 결정을 내리는 그녀에게 힘을 주는 것은 그녀의 가족, 충언을 아끼지 않는 남성, 그리고 결국에는 그녀 자신이다. 워싱턴 포스트를 자유를 수호하는 ‘언론’으로서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 이 사회적 신념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분리되지 않고, 나는 이 점이 싫지 않았다. 우리들은 이런 식으로 강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좀 더 솔직하고, 우리를 응원한다. 우리가 현명하면서도 사랑과 다정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덕목이며 역량이다. 자기 좆이 가장 중요한 사람은 절대로 못해낼 일이다.
당연하지만 너무 스필버그 영화라 그가 페미니즘에 재능기부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비꼼 아님) 그는 만약 자신이 지금까지 발휘해 온 장기, 그러니까, 우정과 용기의 덕목을 배우들에 담아내는 것,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긴장감의 리듬을 부여하는 것(서류를 폭탄처럼 찍는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풍성하게 활용하는 것을 다른 대상을 다른 각도로 비추는 데 사용한다면 얼마나 더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지 알았다. 이건 남성 캐릭터들을 보면 알 수있다. 이 영화의 정의로운 남자들은 전에 없이 어딘가 허영기가 있다. 그들은 자신이 정의의 수호자로 역사에 남기를 기대한다. 편집장 벤(톰 행크스)이 부인 토니(사라 폴슨)와 대화하는 장면은 이 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같은 여성으로서 토니는 캐서린 그레이엄이 오로지 잃을 것 뿐인 결정을 용기있게 해냈고, 그것이 벤의 경쟁심리와 공명심보다 숭고한 것임을 우아하고도 명확하게 지적한다.
퍽 아름다운 영화이기도 했다. 미국의 자유를 수호한 어떤 기여도 빼먹지 않으려는 그 속도와 이동의 기술이 근사했다. 이렇게 이동하며 모두 담아낸다
: 전쟁의 현장과 그것을 보고 무언가를 결심한 내부고발자의 눈동자, 함께 자료를 만드는 운동조직, (거짓을 전하는 장관의 입), 주식 시장 상장을 논의하는 캐서린과 프리츠 사이의 신뢰와 애정, 백악관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알리는 전화벨 소리, 캐서린과 편집장 사이의 격의없는 긴장관계.
: 기사를 쏘는 파이프, 활자를 짜맞추는 사람들, 이야기를 배달하고 전하는 사람들, 신문을 만들어내는 거대한 기계, 산업 안의 사람, 산업을 유지하는 국가, (그 무엇과도 관련없이 고립된 모습으로, 우스운 그림자로 등장하는 백악관의 닐슨), 국가를 수호하는 헌법, 헌법의 주권자인 국민, 여성을 응원하며 끝없이 늘어선 여성들. 그들이 보내는 눈빛들 속을 걸어나가는 캐서린 그레이엄. (끝)
어쨌든 그녀는 그런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시험을 치르기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그녀에게 경고와 충고의 고함을 지르는 주교, 사제장, 박사, 교수, 가장, 교육자들을 보았고, 그녀가 그들을 보지 않았기를 바랐지요. 당신은 이런 일을 할 능력이 없고, 저런 일은 해서는 안 됩니다! 대학 연구원과 학자 들만이 잔디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인들은 소개장 없이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열망을 품은 우아한 여류 소설가들은 이쪽으로 오십시오! 이처럼 그들은 경마장의 울타리에 몰려든 관중들처럼 그녀에게 계속 소리 질렀고, 그녀가 치를 시험은 오른쪽이나 왼쪽을 돌아보지 않고 울타리를 넘는 것이었지요. 만약 당신이 욕설을 퍼붓기 위해 멈춰 선다면 당신은 파멸이라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지요. 비웃기 위해 멈추어도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망설이거나 더듬거린다면 당신은 끝장이다. 오로지 뛰어넘는 것만을 생각하라. 나는 그녀의 등에 내 온 재산을 건 것처럼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새처럼 그것을 가볍게 넘었습니다.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민음사, 이미애 역 쏜살문고 판 138p)
P.s. – 영화를 볼 기회는 친구가 만들어준 것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는 이 여성 친구가 어떤 기분인지 생생하게 느끼며 함께 볼 수 있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