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 청년의 의제가 ‘노동시장 밖 노동’이 될 때 생기는 질문들

2022 한국 기본소득 포럼 세션1. 청년, 공유지를 꿈꾸다에 제출한 토론문입니다. 발제문과 다른 토론문들은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의 포럼 안내 페이지 자료집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한인정 연구자의 “생존을 넘어, 모두의 실존을 향한 노동:청년생태활동가들의 일 경험과 의미 연구”는 독특한 소수의 개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연구다. 이 연구는 ‘청년’의 ‘일’과 ‘노동’을 탐색하는 연구이지만, 그 노동이 ‘시장 밖’에 있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청년 노동’에 대한 연구들과는 궤를 조금 달리한다.

청년 정책과 일자리 문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청년”의 정의는 “신체적ㆍ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인데, IMF 체제 이후 한창 무르익은 시기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과실을 맺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부터 ‘청년 문제’가 시작되었고, 그에 기반하여 청년 정책과 청년 기본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실 ‘청년 문제’는 청년의 문제라기보다는 금융화로 예측 불가능해 진 글로벌 시장의 리스크를 노동 시장의 수요자들이 고스란히 공급자들에게 전이하면서 고숙련 정규직 일자리는 줄어들고 저숙련 불안정 일자리가 늘어난 문제, 시장의 문제라고 봐야한다. 그 과정에서 삶이 고단해진 것이 비단 청년 세대만은 아니지만, 이것이 청년 세대의 문제로 논의되어 온 것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청년”마ㅋ저 일자리”가 없는 것이 산업화 이후 자리잡은 사회 통념에 반하는 현상이기도 하고, 조직화 된 ‘청년 당사자’ 운동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그 결실로 2018년 도입된 청년 기본법은 청년을 만 19세 이상에서 만 34세 이하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성취가 이루어지는 동안 청년 당사자 운동에서 결국 해소되지 못한 문제는 ‘청년’이 단일한 존재가 아니고, 같은 처지에 놓여있지 않으므로 하나의 이해관계자로 ‘대의’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청년기본법 제2조) 하려면 고정적이지 않고, 단일하지 않고, 기성세대의 대상화 된 프레임에 갇히기 쉬운 청년 세대의 시민들에게 더 많은 마이크를 쥐어주고, 그들이 청년 세대 내에서 연결될 기회를 다층적으로 제공하는 노력이 필요할테다.

이 연구는 ‘생태적 노동’이라는 키워드로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다. 대도시와 산업단지 중심의 노동 시장을 떠나 자기 삶을 만들어나가는 청년들은 어떻게 노동하고 있으며,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발제문은 덜 하고,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수행하며 공생할 수 있는 다양한 관계를 주도적으로 조직화하는 생태적 노동을 통해 생태적 삶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맥락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연구자가 만난 청년 생태활동가들은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며 획득한 일자리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고 구조적인 한계를 인지함으로써 주체적 관점을 가지고 다른 삶으로 전환을 시도한다.(1. 1) 기존 노동에 대한 평가) 생태적 노동은 도시의 임금노동과는 다른 방식으로 분주하다. 내 생활의 몫을 자급하고, 자연에 인위적인 무리를 가하지 않고 제철에 맞추어 살아가려면 부지런히 무언가를 만들고, 기르고, 채집하고, 돌보아야 한다. 나 자신 또한 그 자연의 일부이므로 휴식을 취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즐겁게 지낸다. 연결된 모든 것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이 흐름 안에서 ‘노동’과 ‘삶’은 ‘워라밸’로 분리되거나, 한 쪽이 다른 쪽을 희생시키지 않고 통합적으로 굴러간다.(1. 3) 생태적 노동의 탄생, 2. 생태적 삶의 탄생) 직장인들 간의 대화에서 흔히 이야기 되는 ‘노동자인 나’와 ‘진짜 나’ 정체성의 분리가 없다. 동시에 전문화 된 하나의 ‘일’만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들은 행사를 기획하고, 교육을 운영하고, 단체에서 활동하거나, 농사도 짓고,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한다. 스스로 온전하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외부에서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보기도 한다. (3. 1) 불인정노동)

이 청년들이 보고 있는 세상은 착취의 악순환으로 생태적 환경을 재생산하지 못하고 조금씩 허물어져 가고 있는 세상이다. 이 인식에서 출발하면 가치는 경쟁과 차별화, 시장점유율, 거래와 교환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잘 지키는 것, 절제하는 것에서 발생한다. 새로운 인식에 기반하여 자기 삶을 자립해내고자 하는 청년은 곧 환경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이들은 매일매일 조금씩, 자급자족을 위한 것을 생산하면서 새로운 규범과 질서를 만들어 나간다. 지속가능한 일과 삶, 환경을 지향하는 이들의 노동이 정말로 계속되려면 결국 이 질서가 이들의 삶 바깥까지, 지역사회와 시장, 법과 정책에 자리잡아야 한다.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높은 임금, 더 좋은 복지 같은 임금노동 시장의 조건이 아니라 기만적이지 않고, 착취적이지 않은, 노동의 성과에 나를 끼워맞추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삶이다. 이것은 창업 지원 정책이나 구직 지원 정책의 틀 안에서 해소될 수 없는 욕구다. 여기에 필요한 것은 어떤 특정한 성과를 겨냥한 지원이 아니라, 지배적인 질서에 이끌려가지 않고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도록 버티기 위한 힘, 권한, 협상력 그 자체다.

‘청년’은 계속 ‘변화’하는 주체다. 10년 전의 ‘청년’과 오늘의 ‘청년’은 단일하지 않다. 그러나 의사결정자들은 대체로 2,30년 전에 ‘청년’이었던 사람들이다. 잘 정리된 문제의식은 아니지만 발표문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의 청년들이 노동시장을 통해 사회에 진입하면서 맞닥뜨렸던 가장 큰 문제가 기회의 수가 절대적으로 너무 부족한 것이었다면, 현재의 청년들이 사회에 진입하며 맞이하는 문제는 대도시에는 비집고 들어갈 자기 삶의 틈이 없고, 농촌 지역에는 표준화 된 자원이 없어 모든 걸 너무나 “운”과 “제도”에 기대어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 아닐까? (3. 생태적 삶의 불안정성 3)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 4) 사적안전망에 기대어) 이는 결국 노동 시장의 문제가 청년 문제로 표현되었던 것 처럼, 기후위기와 저성장 시대 생태 사회로의 전환의 로드맵이 부재한 우리 사회 전체의 역량 문제가 청년 삶의 위기와 도전으로 드러난 것일지도 모른다. ‘번아웃’, ‘조용한 퇴사’와 같은 단어들, 그리고 지속적인 일터에서의 재난 사고들이 보여주듯이 오늘의 청년 세대는 노동 환경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갖고 있다. 대안적 일과 삶을 시도하고 추구하는 경향은 앞으로도 확산되어 나가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위기’를 공동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시장’보다 더 지배적인 위치에 있을 수 있을까? 생태적 삶의 공간이 대도시에 종속된 또 하나의 여가 시장에 잠식되지 않으려면, 어떤 자기조직화가 일어나야 할 지 질문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