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역사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때

: 로마(2018, 알폰소 쿠아론) @상상마당

모리님께.

일주일만에 첫 편지를 보냅니다.[1]

그날, 집에 돌아와 함께사는 친구에게 오늘 극장에서 되게 오랜만에 졸았다고 말했더니 가볍게 웃고나서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근데 극장에서 자는 거 은근히 기분좋지 않아? 어렴풋한 빛에 깨잖아. 되게 기분좋게 일어나져.” 맞아 정말 그렇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마도 “어렴풋한 빛”이라는 단어에 반응한 것인지, 그 순간 마음 속에 그날 본 영화가 마치 선잠에 들어 꾼 꿈처럼 희미하게 떠오르더니 사라졌어요. 귓가엔 어린 시절 저녁께쯤 되면 들리던 두부 파는 아저씨의 종소리가 초여름의 날벌레 소리와 함께 웅웅 맴돌았고요. 그건 참 오랜만에 보는 내면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영화라는 게 종종 심상을 남기기도 하는 거였지.’ 어떤 멋진 장면의 인상이나 줄거리나 인물이 기억에 새겨지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원래 있었던 느낌들을 일깨웠던 영화들을 모처럼 떠올렸어요. [2]


‘로마’는 롱테이크가 자주 나오는 흑백 영화였지만 명상적이기보다 너무나 구체적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아니, 어쩌면 이건 정말로 명상적인 특징일지도 모르겠네요 감각에 집중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래서 잠이 솔솔 왔던걸까…(조조를 보기 전 날에는 일찍 자는 걸로.) 아무튼 우리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잠시 이야기 나누었듯이 상징으로 가득한 영화였는데요. 너무 상징적인 작품들은 종종 관객을 조금 머쓱하게 하잖아요. 삶에 대한 무거운 의미부여가 호들갑스럽게 느껴진달까. 저는 그렇더라고요. 사실 그래서 감독의 전작인 ‘그래비티’를 보면서는 조금 힘들었거든요. 이야기의 배경으로서의 우주는 그 자체로 일종의 메타포가 되어버리기도 하니까. 로마에서 상징들이 지나가는 경험은 그와는 달랐습니다. 역사 속의 로마도, 이탈리아의 로마도 아닌, 멕시코의 로마를 배경으로, 상징들은 생활의 시공간 속에 촘촘히 스며들어 있었고, 아주 유려한 시청각적 경험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잘 재현된 보편은 개별적인 경험들을 소환합니다.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그날 저녁, 자연스럽게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6.25 전쟁 이야기를 물었던 적이 있는데,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유 그때 정신 없었지, 뭐. 그런 느낌으로. 그저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네요. 카스테라를 좋아하고 매일 매일 노인대학에서 배운 가곡을 복도까지 들리도록 크게 불러서 엄마를 민망하게 했던 우리 집의 할머니가 일제시대도, 6.25 전쟁도, 유신정권도 지나온 사람이라는 것이 좀처럼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도 그런 시대들에 대해 언급하는 일은 없었어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할머니의 것이었죠. 어렸을 때 공부를 더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돈 벌라고 안시켜줬다는 이야기 같은 것. 하지만 무의식중에 일본어 동요를 흥얼거리다가 짜증을 내는 건지 웃는 건지 헷갈리는 말투로 아이고 이건 까먹지도 않는다고 말할 때, 제게는 ‘역사’라고 할만한 것이 갑자기 할머니의 얼굴을 하고, 할머니의 목소리로 살아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했습니다. 할머니가 나보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쇼죠지의 너구리에 대한 동요를 불렀구나.

할머니에게 시대를 평가하는 역사적 관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듯, 역사에 있어서도 우리 할머니는 기억해야 할, 드러나는 존재는 아니었겠죠. 실제로 우리 할머니와 같은 사람들을 부르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어요. 이를테면 할머니는 ‘국제시장’의 등장인물도, ‘응답하라 시리즈’의 등장인물도 아니거든요. 시골에서 상경해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장에 다니지도 않았고, 결혼해서 주부가 되지도 않았어요. 간호사로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홀로 엄마를 낳아 모녀가정을 꾸리셨죠. 그 시대의 역사는 전문직 여성도, 비혼모도 바라보지 않았고요. 부끄럽게도 멕시코의 사정을 잘 모르지만, 로마의 주요 인물들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네모난 집은 역사적 스펙터클에서 비껴서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더욱 부각되는, 이 영화의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은 클레오가 우연히 페르민과 만나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한 뒤 양수가 터지는 때였는데, 제게는 그 순간이 역사와 클레오가 서로를 알아보는 사건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재현의 예술로서 영화는 옛날 일에 대해서 이런 만남을 주선할 수 있네요. 감탄했지만 클레오의 상황은 너무 가혹했고, 우리들에겐 불행한 일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는 남성 감독을 의심할 권리가 충분히 있지 않은가요? 저는 곱씹었어요. 이 영화의 사랑을. 그건 차별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는 분명 아닌 것 같았습니다. 착취와 돌봄과 구분되지 않은 채로 인물들의 삶을 보호하는 무언가였어요. 긍정할 수 없지만 부인해서는 안되고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지난 사정.

여기까지 글을 적고 나니 어떤 보편적인 질문들이 제게 떠오릅니다 : 산다는 일에서 살아남는 일의 비중은 얼만큼일까요? 살아남는 일은 사랑하는 일을 얼마나 일그러뜨릴까요? 아니, 사랑은 어떤 일그러짐 속에서 가능한 것 일까요? 나는 (어쩌면 우리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꼭 근사하지만은 않은 사랑을 한 결과 지금 살아있는 것이구나. 이 발견에 대해 어떤 감정도 들지 않는데요, 다만 흑백의 하늘처럼 애매한 질문들이 한 동안 답 없이 떠다닐 것습니다. 상징은 심상으로 다가와서 결국 질문이 되었네요. 모리님께는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9년 1월,

희원 드림.


[1] 이 글은 이모리님과 함께 월 1회 함께 영화를 보고 글을 쓰기로 해써 쓰여진 글이다. 회신은 백 편의 에세이에서 읽을 수 있다. 영화는 두 편을 보았고, 글은 꼭 한 번 오갔다. 가끔 모리님이 준 단풍모양 향을 피운다. 종이 향을 맡고 싶을 때.

[2] 페드로 코스타의 ‘아무것도 바꾸지 마라’. 아녜스 바르다의 ‘다게레오타입’. 테렌스 데이비스의 ‘먼 목소리, 조용한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