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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원아, 우리 ‘티 타임’ 할까?” 어린시절 우리 엄마는 가끔 작은 금색 방울같이 반짝이는 말을 해서 나의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티 타임이라지만 사실 불을 다 끄고 노란 백열등만 키는 걸 빼면 늘 밥 먹는 식탁에서 늘 쓰는 머그컵에 늘 마시는 과실차를 마시는 평범한 시간이었고 찻잔이나 티 푸드는 없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그런 건 몰랐기 때문에 어린 나는 우리의 근사한 티 타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전등갓 그림자 속의 둥글고 노란 빛 아래, 의자에서 허공에 다리를 흔들며 내 몫의 따끈한 유자차를 마시던 해질 녘 시간은 지금도 떠올리면 편안해지는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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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복도식 아파트에 이십 년 남짓 더 사는 동안 부엌의 노란 등은 어느 틈인지도 모르게 밝은 형광등으로 바뀌었고, 또 몇 년 전부터는 나도 독립해 친구와 함께 살게 되었다. 부모님의 집보다 훨씬 작은 방 한 칸이었지만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물론 처음엔 어디까지나 임시거처로 생각했다. 계약서에도 2년 뒤 재개발이 시작되면 나가야한다고 적혀있었다. 보증금이 그 정도 불안은 수용할 만큼 쌌다.
결과적으로 지지부진한 재개발과 너그러운 주인집과 나의 ‘스튜핏’한 경제생활 덕에 나는 이 평방 2.5미터의 방에서 남은 이십대를 다 보내고 지금도 살고 있다. 4년 간 짐(이라고 쓰고 책과 옷이라고 읽는다)과 일이 늘면서 내 작은 안식처는 먼지와 피로로 가득 찬 곳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전 여느 때처럼 ‘왕자행거’가 옷을 뱉고 있는 매트리스에 모로 누워있던 나는 조립식 책장이 조립식 책상 위로 책을 뱉고 있는 모습을 멍하니 보다 결심했다. ‘더는 안되겠어. 책상은 버리고 서랍장 달린 침대를 사야겠어.’
변덕이 죽끓은 결과 한 달 뒤 방에 들어온 건 서랍장 침대가 아닌 ‘벙커침대’였다. 1층이 없는 2층 침대인데, 아래에 책상이나 수납공간을 넣어 좁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쓴다고들 했다. 나는 그 공간에 1인용 소파와 작은 티 테이블을 두었다. 그리고 크고 가벼운 실용적인 티팟에 여러 꽃향기가 블렌딩된 루이보스 티를 우렸다. ‘가성비 갑’이라서 처음으로 할부를 긁어버린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틀고, 탁상용 스탠드를 키고, 오랜만에 아로마 디퓨저에 초를 켰다. 향기와 노란 led 불빛과 피아노 소리가 방의 표면을 한 겹 씩 덮어주자 바람이 새는 나무 창틀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와이파이도 이 방을 픙성하게 채워줬음은 물론이다. 티팟 안 쪽에 수증기가 가득 맺힐 때 쯤 2층 침대에 누워보자며 올라가있던 하우스메이트가 농담을 던졌다. “와, 나 차 마시러 로비로 내려갈게.” “그래 5분 뒤까지 나와. 아니 복도에서 만날까? 사다리 중간에서.” 나는 더 호들갑을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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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프레임 하나로 구조가 생기자 수면캡슐 겸 창고였던 내 방은 집에 대한 내 기억과 소망이 어렴풋이 벽에 반영된 무언가로 정리되었다. 행거가 있는 벽은 옷방, 책장이 있는 벽은 서재, 그리고 거실 위에 침실. 고작 이 정도로 어쩐지 마음에 여유가 생겨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차 한 잔과 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의 집에서 물려받은 작은 행복에 대한 기억이 방의 삶을 견디게끔 하는 것 같다. 여기서도 티 타임은 되니까. 하지만 서울에서 이 정도로 만족해도 괜찮은 걸까? 이러다 찻잔만 든 채로 쥐도 새도 모르게 쫓겨나지 않으려나. 나는 이런 생활이 안타깝지도 않은 나 자신이 좀 염려되고 늘 그렇듯 내 걱정은 엄마가 대신한다. 지난 명절 오랜만에 내 방에 들른 엄마는 그래도 사람 꼴로 살려고 애쓴다고 진심으로 칭찬하며 그래도 이불은 꼭 햇볕에 말리라고 신신당부했다. “삼십분이라도. 알았지?” 알겠다고는 했는데 한낮에 베란다에서 바싹 말린 이불 위에서 뒹굴 때의 포근함까지는 아무래도 이 방에서 감당이 안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