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질문을 돌려받은 날

2019년 4월 11일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이 있기 3시간 전, 진보정당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내용입니다.

저는 오늘 빼앗겼던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바로 ‘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기에 적절한 때는 언제일까?’라는 질문입니다.

발언에 앞서 오늘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응답을 들을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앞장서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생활인으로서 저는 도시에서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고 공부하며 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30대 초반의 여성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이런 저를 무어라 불러야 할 지 어려워하는 분들을 종종 만납니다. 그 분들께 저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아직 뚜렷한 직장에 자리잡지 않았고, 그러니까 아직 진짜 안정된 삶에 들어서지 못한, 그런데 그런 것 치곤 나이가 많은 어떤 불완전한 상태의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제 인생은 결코 불완전하지 않습니다. 다만 복잡할 뿐입니다. 저는 직장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며 풍성한 가치를 생산하고, 더 다양한 커뮤니티에 소속감을 느끼고, 또 친구와 우정에 기반한 가족을 꾸려 살고 있습니다. 이런 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건, 이 사회의 잘못이지 결코 저의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간극을 감당해야 할 책임은 항상 제게로 돌아오곤 합니다. 제가 문제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낙태가 죄가 되는 나라에서, 나의 몸과 관계에 대한 나의 권리, 나의 결정을 수치스러운 과정으로 벌하고 징벌적으로 낙인 찍으려 하는 사회에서, 남성과의 연애 – 결혼 – 합법적인 임신- 출산 과정에 탑승하지 않는 모든 삶은 언제고 자신의 정당한 선택을 죄인처럼 변호해야 할 의무를 지게 됩니다.

특히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과정 앞에서 이 책임은 극대화 됩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때에 아이를 낳고, 제가 원하는 이들과 함께 아이를 양육할 선택권이 당연히 제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임신’은 하면 큰일 날 일이었지 나의 권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 사는 동안, 앞으로 줄곧 ‘임신’은 골치 아픈 일, 나의 시민권과 몸을 위협할 일일 것이고요.

하지만 아닙니다. 이것은 사회가 나의 권리 나의 질문을 빼앗았기 때문에 생긴 왜곡된 판단입니다. 나는 섹스와 임신과 출산과 양육 그 모든 과정에 있어서 언제, 누구와 함께 할 지 혹은 안할 지를 내가 정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스스로 선택하기 곤란한 사회적 환경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지 않습니다.

질문에 대답해야하는 쪽은 국가임이 명확합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생산하고 관계하고 권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내 몸에 대해서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지 못한 모순은 왜 발생하는 것입니까? 다시 한 번, 이 질문의 방향을 바꿔낸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헌법재판소는 헌법 제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에 근거하여 제대로 위헌 판결을 내리기 바랍니다.

국가가 여성의 몸을 인구재생산의 도구로 생각하며 통제하는 시대는 이제 과거에 묻읍시다.
억압되어 온 우리의 권리를 되찾아오는 순간, 이 질문들, 그러니까 “나는 언제 누구와 섹스할 지, 또 임신을 하거나 하지 않을지, 누구와 아이를 양육하거나 하지 않을 지” 라는 질문들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답하는 순간, 거기서부터 우리는 국가권력 안의 당신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더 멋진 미래를 창출해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녹색당은 가장 먼 미래를 가장 앞장 서 바로 지금 말하는 정당으로서 이 질문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에세이] 불완전한 엄마의 딸

엄마랑 같은 반이었다면 우린 정말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을 거라고 가끔 생각했다. 엄마랑 싸우거나 어쩐지 날카로운 분위기가 며칠 째 계속될 때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엄마는 좋은 사람이니까. 우리가 친구였다면 얼마나 속깊은 이야기들을 나눴을까. 자신의 가장 인간적인 부분을 나눌 수 있다는 데서 큰 힘을 얻을 수 있었을거야. 나는 엄마가 연락하면 기쁘게 달려갔을 거야. 하지만 나는 가끔씩 엄마의 전화를 못본 척 안받는 딸.

나는 엄마에게 좋은 것만 받고 싶어하는 좀 이기적인 딸이었다. 엄마의 정의로움과 의연함, 눈치 빠른 실행력,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감각만 알고 싶었다. 머리가 크면서 보이는 엄마의 지나친 열정, 선을 넘는 호의, 다소 허영심처럼 보이는 낭만적인 기질을 나는 부끄러워했다. 나의 이런 마음은 아마 때때로 밖으로 새어나와서 엄마를 상처입혔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 상처는 엄마가 내게 준 것과도 닮았다. 이 이야기는 구구절절하지 말아야지. 짧게 요약하자면 나의 유별난 구석을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모든 면에서 평범하기를 기대했다는 이야기다.

유독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꼈던 순간은 엄마가 내게 어떤 여성성을 강요하는 말을 할 때였다. ‘남자랑은 손도 잡는 게 아니야.’ ‘너 요즘 살 좀 찌는 것 같다.’ ‘너도 좀 여성스럽게 입고 다니면 안되니?’ 왜냐하면 내가 자라는 내내 엄마는 페미니스트였으니까. 여성 위인전집을 읽히고, 남성의 권위를 비웃으며 여성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때문에 나는 한동안 엄마를 무척 기만적인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내 멱을 잡은 채로 네가 자유롭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그 두 가지 모두가 하나의 사랑이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이 간극을 이해시키기가 도무지 어려웠다. 엄마는 그저 애정에 대해 돌아오는 것이 왜 거부인지 의아해했던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 역시 분열적인 욕망 속에 있었다. 엄마의 사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엄마에게 완전히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어느 날 나는 나의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엄마의 그 모순을 이해했다. 아버지도 오빠도 없이 외할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며 2인 분의 몫을 하리라 생각한 자존심 세고 모험적인 여자아이와, 언제나 손 쉬운 침입의 대상으로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보수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여자아이가 한 사람으로 자라났다는 것을. 엄마는 멋진 사람이지만 당연하게도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다. 그리고 완벽한 페미니스트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딸인 나는 또 이런 문제들을 가진 불완전한 페미니스트이고, 나는 이 역사의 패턴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존경하는 아버지와 자랑스러운 아들의 역사가 아닌 사랑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엄마가 나를 완전히 인정해주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늘 의심의 여지없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오늘도 온전히 불완전한 인간으로 나답게 살 수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주관한 ‘여성과 소수자가 나답게 살기 위한, 질문을 바꾸는 섹슈얼리티 집담회 페미니스트 5인의 가족 이야기 : 아빠 성은 떼어냈지만’에 참여한 후 집에 오는 길에 굴러나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