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취약성을 SNS에서 드러내기

친구들에게 나는 꽤 헤비한 SNS 유저로 보이는 모양이다. 스스로는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 바로 이 점이 정말로 헤비 유저라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언가에 깊이 몰입할 수록 자극은 점차 줄어들고 당연해져서 스스로는 한 발만 담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법이니까.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일년에 극장에서 영화를 백 편 가까이 보고도 자신이 시네필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전력이 있다. “와 너 영화 되게 좋아하나보다.” ‘아니 뭐 되게까지는 아닌데…’ 친구들이 옳았다.

당연히 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인스타그램을 모두 한다. 페이스북에는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홍보를 주로 하고, 트위터에서는 사회를 대상으로 화나는 일들에 대한 비평이나 연속적으로 발전해가는 선언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은 bgm과 도토리만 없을 뿐 사실 상 나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가상의 미니룸이 아니라 리얼 미니룸을 찍어올리고 있달까. 또한 세 개의 플랫폼은 모두 내 글의 발행 채널이기도 하다.

한 때 나는 이 세 개의 SNS 계정을 분화된 자아를 운용하는 데 사용했었다. 그건 마치 공 세 개로 저글링을 하는 일 같았다. 하나는 오른손에, 다른 하나는 왼손에, 그래서 언제나 공중에 또 하나의 공이. 플랫폼 간에 중첩되는 관계들은 없지는 않았지만 극히 적었다. 나는 페이스북에 회사 사람들이 봐도 안전한 글을, 트위터에 페미니스트들이 봐도 빻지 않은 내용을, 인스타그램에 지인들에게라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TMI들을 올렸다. 각각의 플랫폼에서 얻는 것이 또 서로를 지지해주는 상호작용을 이루고 있었다. 직장에 다니며 책임감 있게 돈을 벌고 사이드 프로젝트에 자아의 많은 부분을 의탁했던 당시의 생활이 반영된 운영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 나는 저글링을 하는 나를 팔짱을 끼고 바라보며 만족했다. ‘좋아. 좋은 리듬이야. 괜찮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첫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안간힘을 쓰는 줄도 모르고 매일 최대 출력으로 일해보던 나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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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그런 시간이 일년 쯤 지나고 공들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내가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공 같았다. 핀볼 게임 속의 공.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며 정신없이 점수를 올리다가 구멍으로 쏙 낙하해버릴 운명이 뻔했다. 그때 지푸라기 잡듯이 일기를 써서 SNS에 올렸다. 왜 그것이 나의 지푸라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을 담은 글들이 일과 관계의 부작용처럼 도르르 굴러나왔는데 약간은 보너스 같기도 했다. 통제력을 잃은 나는 마구잡이로 올렸다. 인스타에도, 페이스북에도, 트위터에도. 노골적인 ‘나 힘들어’일 때도 있었고 힘든 사람이 턱괴고 바라보는 풍경에 대한 묘사일 때도 있었는데, 아무튼 징징거림에 대한 부끄러움은 차치하고 그러고 나면 조금 살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약한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약간의 해방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감정의 토로였던 것이 점차 내게 있는 취약점들을 글로 풀어내는 일로 변화해갔다. 나는 나의 어린시절에 대해, 고질적인 우울함과 어리석음에 대해, 아빠의 병에 대해, 동생의 장애에 대해, 동성과의 연애 경험에 대해, 또 나의 가난과 작은 방에 대해, 동시에 내가 누린 특권들에 대해 글을 쓸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그것은 나를 약자로 두고 호소하거나 변명하는 방식의 정확히 정반대를 수행했다. 점차 부끄러움도 해방감도 사라지면서 누가 어떻게 보든 이런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 같은 것이 남았던 것이다.

분명 그 전에도 나는 스스로를 인정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SNS 공간에 하나씩 드러내다보니 의외로 새롭게 인정하게 되는 지점들이 있었다. 나 자신에게만 솔직하면 될 일 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에 대해 안이한 태도로 일관해왔다는 것을 랜덤한 타인들 앞에서 솔직해지면서 느꼈다.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거나 리트윗을 해줬기 때문에 일어난 변화임을 부정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타인의 인정을 어느정도 필요로 하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자신에게 솔직하기’라는 내면의 사정은 의외로 어느정도 공적인 일이었던 것이다. 공과 사를 명확히 가르고 비밀을 가진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세계와의 상호성을 인지하고 자아의 실현과 더 나은 세계를 올바르게 정렬하는 것, 그로써 안팎으로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온전한 성숙의 지표임을 안다. 어린 시절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희안하게 돌아왔다.

그리하여 저글링을 하는 동안 서로의 영역에 숨겨야 했던 지점들은 이제 통합되어 보여지는 내가 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과정이 진행됨과 동시에 세 개 플랫폼에 중첩되는 관계들이 늘어났다. 나는 사이드 프로젝트의 행사에 직장 동료들을 초대하기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함께하는 동료를 직장에 연결해주기도 한다. 이제 나는 친구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언젠가 함께 일하게 될 수 있는 사람에게도, 모르는 사람에게도 보여질 수 있는 글을 쓰고 세 개의 플랫폼에 조금 더 명확한 톤으로 발행한다. 팔짱을 낀 나 같은 것은 없다. 글을 마치고 기분좋게 기지개를 켜는 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 (끝)


p.s.- 이렇게 내 글은 거의 모두 나에 대한 것이다. 가끔 우리에 대한 것이 되기도 하지만, 언제나 내 곁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이것이 타인에게도 의미있는 것인가 싶을 때가 많았다. 읽어달라는 것은 염치없는 일일까? 내뱉는 말과는 달리 이런 생각을 한켠에 늘 안고 있다. 그래서 이 레터를 쓰는 동안 어떤 글이든 자유롭게 써보며 낯을 떠올릴 수 있는, 모두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필자인 독자들이 있다는 호사를 마음껏 누려볼 심산이다. 고맙습니다.